핵심 구절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창세기 19:1, 9)

1. 묵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났던 시간은 햇볕이 뜨거운 ‘정오’였습니다. 반면, 오늘 본문에서 롯이 천사들을 맞이하는 시간은 어둑어둑한 ‘저녁’입니다. 이 시간의 차이는 두 사람의 영적 명암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 죄악의 도시 소돔에서 롯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는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성문에 앉은 자, 성공한 롯의 착각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재판이 열리고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권력과 성공의 중심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소돔을 그저 바라만 보던 롯이(13장), 장막을 옮기더니, 이제는 그 도시의 유력자가 되어 성문에 앉아 있습니다. 롯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비록 죄 많은 도시지만, 나는 여기서 성공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어. 나는 이 안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있어.”
현대인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중심부(성문)에 들어가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성공한 자리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타협이 낳은 무기력한 영향력
그러나 막상 위기가 닥치자 롯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소돔 백성들이 몰려와 천사들을 내놓으라고 위협할 때, 롯은 그들을 “내 형제들아”라고 부르며 달래려 합니다. 심지어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자신의 두 딸을 내어주겠다는, 상상할 수 없는 비윤리적인 타협안까지 제시합니다. 악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악을 선택하는 롯의 모습은 이미 그가 소돔의 가치관에 깊이 오염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가장 뼈아픈 것은 세상의 반응입니다. “이 자가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9절) 소돔 사람들은 롯을 비웃었습니다. 세상과 적당히 섞여 성공을 누리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만 거룩한 척하는 성도를 세상은 결코 존경하지 않습니다. 영향력은 ‘지위’가 아니라 ‘구별됨’에서 나옵니다. 맛 잃은 소금은 밖에 버려져 밟힐 뿐입니다.

문을 찾지 못하는 세상, 문을 여시는 하나님
천사들은 타락한 무리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그들은 눈이 멀고도 끝까지 “문을 찾으려고” 더듬거립니다. 이것이 죄에 중독된 세상의 실존입니다. 심판 앞에서도 멈추지 못하는 탐욕의 끝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대면하는 ‘장막’에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성공을 즐기며 ‘성문’에 앉아 있습니까? 비록 롯은 타협하고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롯이 문을 닫고 숨으려 할 때, 하나님은 구원의 문을 열어 그를 강권적으로 이끌어 내십니다. 우리의 어설픈 성공보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가 우리를 살립니다.

2. 삶의 적용
1) 내가 앉아 있는 ‘성문’ 점검하기
나는 세상에서의 성공과 인정을 위해, 신앙의 양심을 조금씩 양보하며 ‘적당히’ 타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지금 편안하게 앉아 있는 자리가 영적으로는 위험한 ‘소돔의 저녁’일 수 있음을 돌아봅시다.

2) 영향력의 원천 회복하기
직장과 가정에서 나의 영향력은 어디서 나옵니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 똑같은 욕망을 가지고서는 결코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타협이 아닌 ‘거룩한 구별됨’을 회복하는 하루가 됩시다.

오늘의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소돔과 같은 세상 속에서 롯처럼 성공의 자리에 앉기를 그토록 원했던 저의 속물근성을 고백합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도 그것을 지혜라고 착각했고, 거룩함을 잃어버린 채 선한 영향력을 끼치겠다고 자만했습니다.
주님, 맛 잃은 소금처럼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성문’에 앉아 안락함을 즐기기보다, 다소 투박하더라도 주님과 동행하는 ‘장막’의 삶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죄악의 밤이 깊어갈 때, 눈이 멀어 욕망의 문을 더듬는 자가 아니라, 구원의 문을 열어주시는 주님의 손을 잡고 일어나는 오늘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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