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라” (창세기 20:6)

1. 묵상
반복되는 실패, 무색해진 신앙의 경력
아브라함은 지금 인생의 절정에 서 있어야 할 사람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목격했고, 이삭의 출생에 대한 확정적인 약속을 받은 직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낯선 땅 그랄에 도착하자마자 25년 전 애굽에서 저질렀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것입니다.
신앙의 연수가 쌓여도 우리 안의 부패한 본성은 이토록 끈질깁니다. 성화는 직선으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과거의 수치스러운 자리로 다시 고꾸라지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실존입니다.

하나님을 작게 볼 때 시작되는 두려움
아브라함은 왜 또 넘어졌을까요? 그의 변명은 이랬습니다. “이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11절) 하지만 정작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은 그랄 사람들이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크게 볼 때, 우리는 인본주의적인 꾀를 내게 됩니다. 내가 나를 지키려 할 때, 가장 소중한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는 위선에 빠지게 됩니다.

범죄를 막으시는 ‘억제의 은혜’
오늘 본문의 가장 놀라운 반전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아닌 이방 왕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꾸짖으시며 “내가 너를 막아 범죄하지 않게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억제하시는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이 잘나서 언약의 가문이 보존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망쳐놓은 상황을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수습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파멸로 치닫지 않고 이만큼 살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의 죄를 ‘막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에 주어지는 직분
더욱 감격적인 것은, 하나님이 거짓말쟁이로 드러난 아브라함을 향해 “그는 선지자라”라고 선포하신 점입니다(7절). 선지자의 권위는 인격의 완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신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허물을 아시면서도 그를 통해 아비멜렉의 집안을 축복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사명은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나를 택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합니다.

2. 삶의 적용
1) 반복되는 나의 ‘약점’ 대면하기
신앙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반복해서 넘어지는 죄의 습관이나 기질적인 불안은 무엇입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자포자기하기보다, 그 연약함 때문에 오늘도 ‘성령의 붙드심’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인정하며 겸손히 엎드립시다.

2)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의 의식 회복하기
세상이 악하다고 핑계 대며 적당히 타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환경을 두려워하면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환경을 이길 담대함이 생깁니다. 오늘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심을 신뢰합시다.

오늘의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조차 반복해서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저의 부패한 본성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제가 저를 지키려 했던 어설픈 수단들이 얼마나 부끄러운 결과를 낳는지 보게 하옵소서.
주님, 제가 죄의 길로 달려갈 때 강권적으로 막아서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저의 수치를 덮으시고 도리어 ‘선지자’라 불러주시는 그 압도적인 사랑에 힘입어 다시 일어납니다. 오늘 하루, 세상의 힘에 눌리지 않고 생명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담대히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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