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6:20, 24)

1. 묵상
“슬픔은 삭제되지 않고 변형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의 터널’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곧 닥칠 십자가 사건 앞에서 제자들이 겪을 고통을 ‘해산의 진통’에 비유하십니다. 해산의 고통은 참으로 혹독하지만, 그것은 파괴를 위한 고통이 아니라 ‘새 생명’을 낳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근심이 단순히 사라질 것이라 하지 않으시고,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슬픔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뚫고 태어난 ‘부활의 기쁨’이 이전의 고통을 완전히 압도하고 의미를 바꾸어 놓는다는 뜻입니다. 지금 당신이 겪는 그 ‘진통’은 결코 헛된 낭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고통의 자리에서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기쁨을 잉태하고 계십니다.

“잠깐의 시간이 주는 영원한 소망”
주님은 반복해서 “조금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그 ‘조금’은 스승을 잃은 절망의 시간이었지만,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그것은 영원한 승리를 위한 찰나에 불과했습니다.
우리의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끝이 없을 것처럼 길게 느껴지지만,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아주 ‘잠깐’입니다. 성령의 시각으로 현재를 바라보십시오. 육체의 눈은 하나님의 부재를 보며 탄식하지만, 믿음의 눈은 ‘조금 후에’ 우리를 찾아오셔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부활의 주님을 봅니다. 이 ‘잠깐’의 인내가 우리를 빼앗기지 않는 영원한 기쁨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늘 보좌의 문을 여는 마법 같은 이름”
주님은 슬픔에 잠긴 제자들에게 놀라운 특권을 하나 더 선물하십니다.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도를 마치는 주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자녀가 아버지의 신용카드를 들고 시장에 나가는 것과 같은 ‘법적 권세’입니다.
우리가 내 공로가 아닌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하늘의 모든 자원이 우리의 삶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우리가 너무 많이 구하는 것 같아 입술을 닫을 때, 주님은 오히려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지 못해 여전히 근심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십니다. 기도는 우리 삶의 보화를 파내는 작업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때, 우리의 공허한 마음은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지는 ‘충만한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2. 삶의 적용
1) 고난의 ‘이름표’ 바꿔 달기
오늘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에 ‘사망 선고’라는 이름표 대신 ‘해산의 진통’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보십시오. “이 고통 뒤에 하나님이 어떤 생명을 잉태하고 계실까?” 기대하며 오늘 하루를 인내로 견뎌 보시기 바랍니다.

2) 잠들어 있는 ‘예수 이름’의 권세 깨우기
고민만 하느라 정작 기도는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가장 해결되지 않는 한 가지 문제를 놓고, “내 의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구체적으로 간구해 보십시오. 내 힘으로 풀 수 없는 문이 그 이름의 열쇠로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인생의 짙은 안개 속에서 ‘조금 있으면’이라는 주님의 약속을 붙듭니다. 지금의 고통이 나를 무너뜨리는 형벌이 아니라, 새로운 기쁨을 잉태하는 복된 진통임을 믿게 하옵소서.
슬픔에 침몰당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하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의 응답을 통해 세상이 줄 수 없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오늘 하루도 내 감정이 아닌 주님의 승리를 선포하며 걷게 하옵소서. 우리를 모든 근심에서 건져 기쁨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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