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창세기 19:16)

1. 묵상
농담이 되어버린 진리
심판이 코앞에 닥친 긴박한 순간, 롯은 사위들에게 다급하게 외칩니다. “이 성을 떠나라!”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더라”고 기록합니다. 왜 그들은 장인의 말을 웃어넘겼을까요? 소돔의 영적 어두움과 더불어, 평소 소돔의 성문에 앉아 세상의 성공을 즐기던 롯의 삶에서 그들은 어떤 ‘영적인 권위’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종종 교회의 외침을 농담처럼 가볍게 여깁니다. 혹시 내 삶이 세상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내가 전하는 복음조차 그들에게는 그저 공허한 농담이나 헛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아닐까요? 뼈아픈 마음으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봅니다.

위험한 지체 : 소돔에 대한 미련
더 충격적인 것은 롯의 태도입니다. 그는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았고, 천사들의 재촉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롯이 지체하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지체하다’는 미련 때문에 머뭇거리는 것을 뜻합니다. 롯은 소돔에서 쌓아 올린 재산과 안락한 집,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기가 너무나 아까웠던 것입니다.
현대인인 우리도 종종 ‘영적 지체’의 늪에 빠지곤 합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조금만 더 즐기고”라며 거룩한 삶을 자꾸만 내일로 미룹니다. 세상의 안락함에 취해, 심판의 경고를 듣고도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는 영적 마비 상태, 어쩌면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솔직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손을 잡아끄시는 ‘강권적인 은혜’
만약 구원이 롯의 결단에만 달려 있었다면, 그는 소돔과 함께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저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해 롯의 손을 ‘잡아’ 이끄셨습니다. 원어 성경에서 ‘잡다’는 말은 ‘움켜쥐다’, ‘강제로 고정시키다’라는 강력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롯이 제 발로 걸어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강권적으로 끌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은혜’입니다. 죄에 대한 미련으로 머뭇거리는 우리의 손을 억지로라도 잡아끌어 구원의 자리에 세우시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 그 ‘자비’가 오늘 저와 여러분을 살게 했습니다.

2. 삶의 적용
1) 나의 ‘소돔’에서 머뭇거림 멈추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들, 끊어야 함을 알면서도 “조금만 더”라며 지체하고 있는 습관은 무엇입니까? 미련이 남은 그 자리에서 이제는 과감히 일어날 때입니다.

2) 나를 붙드시는 손길 느끼기
때로는 원치 않는 상황이나 실패가 나를 세상에서 떼어놓으려는 하나님의 손길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단순히 아픔으로만 여기지 말고, 나를 살리기 위해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고 감사하는 하루가 됩시다.

오늘의 기도
지체하는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심판의 경고 앞에서도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에 롯처럼 머뭇거리고 있는 저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안락함에 젖어 영적인 감각이 무뎌져 있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제 힘으로는 이 익숙한 죄악의 도성을 떠날 용기가 부족합니다. 그러니 주님, 오늘 제 손을 강하게 붙잡아 주시옵소서. 저의 의지보다 강한 주님의 은혜로 저를 끌어내어 주시고, 세상의 가벼운 농담 같은 즐거움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진리를 붙들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나를 살리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을 신뢰하며 순종의 길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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