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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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 왜 사랑해야 할 곳이 전쟁터가 되었을까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두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가정’과 ‘일터’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가장 큰 아픔과 스트레스를 주는 곳 역시 가정과 일터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유와 해답을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첫째, 가정의 위기: ‘돕는 배필’에서 ‘주도권 싸움’으로
하나님은 본래 부부를 서로 돕고 사랑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하지만 죄가 들어온 후, 관계의 질서가 깨졌습니다. 16절에 “너는 남편을 원하고”라는 말은 단순한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통제하려는 욕구를 뜻합니다. 반대로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는 말은 사랑의 섬김이 아닌, 힘으로 찍어 누르는 강압적인 지배를 의미합니다.
서로를 섬겨야 할 부부가 “내가 이겨야 해”, “내 말대로 해야 해”라며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것, 이것이 타락한 가정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둘째, 일터의 고난: ‘축복의 동산’에서 ‘가시덤불 밭’으로
일 자체는 죄의 결과가 아닙니다. 타락 이전에도 일은 거룩한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지으면서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17절).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놓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시덤불은 무엇입니까? 불합리한 직장 상사, 꽉 막힌 시스템, 노력한 만큼 나오지 않는 성과, 그리고 경제적 불황 같은 것들입니다. 일터가 보람의 장소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하는 고통의 현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회복의 길은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가정의 회복은 ‘십자가의 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셨듯이, 부부가 서로 “내가 당신을 이기려 하지 않고, 당신을 섬기겠습니다”라고 고백할 때, 깨어진 관계는 치유됩니다.
일터의 회복은 우리의 ‘소명’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주받은 땅에서 한숨만 쉬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시덤불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심도록 부름받은 ‘거룩한 경작자’입니다.
2. 삶의 적용
1) 가정에서 : “당신을 통제하지 않겠습니다.”
배우자나 자녀를 내 뜻대로 바꾸려던 시도를 멈추십시오. 잔소리와 비난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내 주장을 내려놓고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요”, “내가 도울 게 없을까요?”라고 물어보십시오. 주도권을 내려놓는 그곳에 평화가 깃듭니다.
2) 일터에서 : “가시덤불을 뽑는 정원사가 되겠습니다.”
직장에서 힘든 일이나 까다로운 사람(가시덤불)을 만날 때, “왜 나만 이렇게 힘들지?”라고 원망하기보다 관점을 바꿔보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이 거친 땅을 가꾸라고 이곳에 보내셨구나.” 오늘 내가 처리하는 업무 하나, 동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가시덤불을 걷어내는 거룩한 사역임을 기억하십시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사랑만 넘쳐야 할 가정이 주도권 다툼으로 얼룩지고, 보람차야 할 일터가 가시덤불로 가득 차 있음을 고백합니다. 저의 죄된 본성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가정에서는 통제하려는 마음 대신 섬기는 마음을 주시고, 일터에서는 불평 대신 가시덤불을 걷어내는 사명감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저를 통해 무너진 곳들이 다시 에덴의 기쁨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