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요한복음 12:13-15)

1. 묵상
내가 흔드는 ‘종려나무’와 주님이 타신 ‘나귀’
예루살렘은 열광의 도가니였습니다. 무리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지금 구원하소서)”를 외칩니다. 당시 종려나무는 로마의 압제로부터 우리를 해방해 줄 강력한 정복자를 상징하는 민족주의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군마를 타고 위풍당당하게 입성하여 자신들의 결핍과 정치적 갈망을 단번에 해결해 주길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선택은 뜻밖이었습니다. 그분은 화려한 화려하고 힘센 말 대신, 보잘것없는 ‘어린 나귀’를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죄짐을 대신 지고 도살장으로 향하는 ‘평화의 왕’이자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자기 계시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원하는 방식의 성공과 해결을 요구하며 종려나무를 흔듭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해결사’가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진정한 평화를 선물하시는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시간, 그 ‘후에야’ 깨닫는 은혜
본문 16절은 아주 정직한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3년이나 주님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제자들도 입성의 현장에서는 그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저 분위기에 휩쓸렸거나, 주님의 나귀 타심을 의아하게 여겼을 뿐입니다.

그들이 이 모든 것이 성경의 성취였음을 깨달은 시점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 즉 십자가와 부활 이후 성령의 조명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우리 삶에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나귀의 시간’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낮은 길로 나를 인도하시는지, 왜 더 빠른 길을 두고 돌아가게 하시는지 묻게 됩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안갯속 같아도, 훗날 성령께서 우리 눈을 열어주실 때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 고난의 걸음조차 주님의 완벽한 계획이었군요.”

2. 삶의 적용
1) 내 방식의 ‘호산나’ 내려놓기
오늘 내가 주님께 간절히 구하고 있는 기도 제목을 살펴봅시다. 혹시 주님의 뜻보다 ‘내 욕망의 실현’을 위해 종려나무를 흔들고 있지는 않나요? 내 기대를 앞세우기보다, 나귀를 타고 낮아지신 주님의 통치 아래 내 삶을 겸손히 내어드리는 시간을 가집시다.

2) ‘해석의 은혜’를 구하기
현재 내 삶에서 이해되지 않는 고난이나 상황이 있다면, 내 지식으로 판단하기를 멈추고 기도합시다. “주님, 당장은 알 수 없으나 이 모든 과정이 영광으로 가는 길임을 믿습니다. 성령님, 이 사건을 주님의 은혜로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을 주소서.”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힘과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겨 나귀 타고 오시는 주님의 겸손을 보지 못했던 저의 눈을 씻어 주소서. 내가 원하는 응답이 없다고 불평하기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신뢰하게 하소서.
지금은 이해되지 않는 삶의 파편들이 결국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퍼즐 조각이 될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 내 뜻을 관철시키려 하기보다 평화의 왕이신 주님의 다스림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를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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