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본분을 다하는 신앙이 아름답습니다.

By 2018년 12월 26일No Comments
전래동화를 읽다 보면 우리는 많은 경우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한 부류는 마음씨가 착하고 고운 선인들이고, 또 한 부류는 그와 달리 마음씨가 고약한 악인들, 혹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꾀를 부리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길 즐겨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대비 되는 사람들이 전래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전래동화가 ‘권선징악’[勸善懲惡 – 선을 권하고 악을 나무람]의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콩쥐 팥쥐’ 입니다.
아기 때 어머니를 잃은 콩쥐는 열네 살이 되었을 때, 새어머니와 동생 팥쥐를 얻게 됩니다. 그 동안 외로웠던 콩쥐는 아마도 가족에 대한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새어머니와 팥쥐는 콩쥐를 아주 못 살게 굴었습니다. 어느 날 동네에서 큰 잔치 가 열렸습니다. 잔치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콩쥐의 마음을 안 모녀는 콩쥐에게 해결 불가능한 몇 개의 일거리를 넘겨주고는 신나게 잔치에 참여하러 갑니다. 맡겨진 일들의 부당함을 잘 알고 있었던 콩쥐이지만, 그녀는 미련해 보일만큼 맡겨진 그 일에 온 힘을 쏟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했던 도움의 손길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결국 우연히 원님의 눈에 들게 되어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콩쥐 팥쥐의 내용입니다.
콩쥐 팥쥐의 내용을 예로 들었지만 이런 부류의 이야기들 속에는 모두 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한 사람들이 특별한 도움을 입기 전에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떠한 행운을 만나게 되었을 때 우리가 기꺼이 함께 기뻐해 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주어진 행운이 불편하거나 부끄럽게 여겨지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그러한 복을 받아도 좋을만큼의 삶을 이미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 어떠한 복을 받아 누리게 되었을 때에 그 복이 부끄러운 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에게 수긍이 가고 인정받을 만한 모습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것이 먼저 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부정하거나 우리의 행위가 그 은혜에 대한 조건으로 제시되어야 함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구원 그 이후의 삶에 있어서 우리 믿는자들의 본분과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인내하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복이 분명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칭찬 받는 삶을 살기 원하신다면, 주어진 상황을 탓하기 보다 먼저 성도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 복을 더 해 주시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들로 채워져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