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 창세기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4:26)

1. 묵상
오늘 우리는 인류 역사의 첫 페이지이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축소판인 창세기 4장을 마주합니다. 이 장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가인의 길 : 스스로 강해지려는 몸부림
첫 번째는 ‘스스로 강해지려는 사람’ 가인입니다. 가인의 이름은 ‘얻다’, ‘획득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는 이름처럼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얻고 성취하려 했습니다. 심지어 예배조차 하나님께 무언가를 지불하고 복을 받아내려는 ‘거래’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제물이 거절당했을 때, 그는 하나님을 향해 분노했고 안색이 변했습니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는데 왜 알아주지 않느냐”는 억울함,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직장과 가정에서 자주 느끼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결국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 ‘에녹 성’을 쌓습니다. 하나님 없는 불안함을 잊기 위해 더 높은 담을 쌓고, 화려한 문명을 만들지만, 그 안에는 라멕의 칼 노래(4:23-24)처럼 폭력과 두려움만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사람의 도성’, 곧 경쟁 사회의 민낯입니다.

에노스의 길 : 약함을 아는 것이 능력입니다
그러나 본문 끝자락에 ‘자신의 약함을 아는 사람’ 셋의 계보가 등장합니다. 아벨 대신 주신 아들 셋은 자녀를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짓습니다. 에노스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병약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스스로를 ‘용사’라 칭하며 강해지려 할 때,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을 ‘에노스(연약한 자)’라 고백했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자신의 힘으로 성을 쌓을 수 없음을 깨달은 순간, 나의 연약함을 뼈저리게 인정한 그 순간이 바로 참된 예배가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가인은 분노하여 성을 쌓았지만, 에노스는 겸손히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강한 척하는 자가 아니라,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의지하는 ‘에노스’들을 통해 은혜의 역사,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내가 쌓은 성을 허물고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나의 화려한 성취(가인)가 아닙니다. 나의 연약함(에노스)을 인정하고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 영혼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짜 평안이 찾아옵니다.

2. 삶의 적용
1) 내 안의 가인 돌아보기
혹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때문에 분노하거나,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을 품고 있지 않습니까? 내 신앙이 하나님과의 인격적 사귐이 아니라, “내가 이만큼 했으니 복 주셔야지”라는 거래는 아니었는지 돌아봅시다.

2) 나만의 ‘에녹 성’ 확인하기
가인은 불안했기에 성을 쌓았습니다. 오늘 내가 불안함 때문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몰두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내가 이것까지는 해결해 놔야 안전해’라며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계획이나 대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쌓고 있는 성벽입니다. 오늘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잠시 깊은 숨을 내쉬며 “이 성벽이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 나의 안전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라고 되뇌어 보십시오. 불안의 폭주를 멈추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3) ‘에노스’의 고백 드리기
오늘 아침, 기도의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주님, 저는 에노스입니다. 저는 연약하고 실수투성이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필요합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맡김’입니다. 내가 붙들고 있던 문제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넘겨드리는 순간, 내 좁은 생각과 계획이 멈춘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크신 일하심이 시작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강해져야만 살아남는 세상 속에서 늘 긴장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나의 성취와 소유로 나를 증명하려던 가인의 헛된 노력을 멈추고, 나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에노스의 믿음을 갖게 하소서. 오늘 하루, 나의 연약함이 곧 주님의 능력이 머무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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