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요 11:48–53)

묵상
“나의 유익인가, 하나님의 영광인가” : 자리를 지키려는 마음의 위험성
나사로가 살아났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신 ‘우리의 자리’를 걱정합니다.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48절)”는 그들의 고백은 솔직하지만 서글픈 죄인의 본성을 보여줍니다. 기적을 보고도 내 평판, 내 재산, 내 위치가 흔들릴까 봐 진리를 밀어내는 것이지요. 가야바는 정치적인 ‘유익’을 위해 예수 한 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계산했습니다. 혹시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뜻보다 “이게 나에게 유익한가?”를 먼저 계산하고 있지는 않나요? 내가 움켜쥐려는 ‘내 자리’가 때로는 생명의 주님을 밀어내는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악인의 계산을 예언으로 바꾸시는 주권” : 절망 속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이유
오늘 본문의 가장 놀라운 반전은 51절에 있습니다. 가야바는 예수를 죽이려는 악한 의도로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그 비정한 말을 인류를 구원할 ‘대속의 예언’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가야바는 자기 권력을 지키려 ‘살인’을 모의했으나, 하나님은 그 죽음을 통해 죄인을 살리는 ‘생명’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상황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역사의 주인은 가야바 같은 세상의 권력자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누군가의 악한 꾀조차도 당신의 선한 목적을 이루는 재료로 삼으시는 분입니다.

“에브라임의 시간” : 멈춤은 후퇴가 아니라 조율입니다
살해 음모가 구체화되자 예수님은 잠시 광야 근처 ‘에브라임’이라는 곳으로 물러나십니다(54절). 이것은 두려워서 도망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유월절)를 기다리며 제자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 위한 ‘의도된 멈춤’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직진만 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소란함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과만 대면해야 하는 ‘에브라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 일이 풀리지 않아 멈춰 서 있거나 외딴곳에 홀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시나요? 그 시간은 패배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에 나의 삶을 맞추는 가장 복된 준비의 시간입니다.

삶의 적용
1) ‘내 자리’ 내려놓기
오늘 결정해야 할 일들 중에서 ‘나의 유익’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내 기득권을 지키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이 주인 되시도록 내 마음의 중심 자리를 내어드리는 기도를 드려봅시다.

2) ‘에브라임’의 자리 찾기
오늘 하루 중 딱 10분만이라도 세상의 뉴스나 소음으로부터 격리된 나만의 ‘에브라임’을 만들어보세요. 짧은 침묵 속에서 나를 위해 대속의 제물이 되신 주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마음의 평안을 회복합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 앞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려 눈을 감았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혹시 저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계산기 두드리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머무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나를 해하려는 세상의 시도조차 구원의 도구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신뢰합니다. 인생의 소란함 속에 있을 때, 주님처럼 잠시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지혜를 주소서. 오늘 하루, 가장 어두운 음모 속에서도 가장 밝은 생명을 이끌어내시는 주님만 의지하며 걷게 하소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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