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9:23)

1. 묵상
평안한 오후, 무장해제 된 영웅

홍수라는 거대한 심판을 이겨낸 믿음의 영웅, 노아가 무너졌습니다. 전쟁 같은 홍수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던 그가, 평화로운 포도원에서 무장해제 되었습니다. 술에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노아의 모습은 우리에게 충격을 줍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처럼, 위대한 신앙의 선배조차 은혜 없이는 한순간도 서 있을 수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성경은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노아의 실패는 우리가 ‘평안하다’고 느낄 때 영적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함을 경고합니다.

수치를 구경거리로 삼는 시선
오늘 본문의 초점은 노아의 실수보다 그 실수를 대하는 ‘두 가지 시선’에 있습니다. 둘째 아들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형제들에게 ‘알렸습니다’. 함의 시선은 관찰자의 시선이자, 판단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가십거리로 삼았습니다. 타인의 허물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즐기고 전파하는 태도, 관계를 파괴하는 이것이 바로 ‘함의 영성’입니다.

뒷걸음질 쳐 덮어주는 사랑
반면, 셈과 야벳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 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대신, 조용히 옷으로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덮었습니다.
이 ‘덮어줌’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벌거벗겨지심으로 우리의 수치를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낱낱이 들추어 정죄하는 사탄과 달리, 주님은 당신의 보혈로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셨습니다. 내가 오늘 셈의 장막에 거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나의 허물을 덮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삶의 적용
1) 나의 입술 점검하기

나는 누군가의 실수나 연약함을 보았을 때, 함처럼 “봤어? 들었어?” 하며 소문을 나르는 ‘뉴스 리포터’입니까, 아니면 셈처럼 조용히 뒷걸음질 쳐 덮어주는 ‘치유자’입니까? 오늘 내가 하려는 말 중 누군가의 수치를 드러내는 말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2) 영적 긴장 유지하기
노아는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장막에서 넘어졌습니다. 일이 잘 풀리고 평안할 때가 도리어 영적으로는 가장 위험한 때일 수 있습니다. 나태함과 방종(술 취함)이 내 삶에 틈타지 않도록 마음의 허리띠를 동입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홍수 심판을 견뎌낸 노아조차 평안한 일상 속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저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주님, 때때로 저는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기보다 들추어내고 판단하며 우쭐댔던 ‘함’과 같았음을 회개합니다.
나의 수치와 죄악을 십자가 보혈로 덮어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주님이 저를 덮어주신 것처럼, 저 또한 가족과 지체들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주는 ‘셈의 장막’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비판하는 혀를 멈추고 살리는 혀를 갖게 하소서.
우리의 영원한 덮개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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