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이에 에브론의 밭 곧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밭과 그 굴과 그 밭에 있는 모든 나무가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사람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되었고” (창세기 23:17–18)

1. 묵상
“처음 산 것이 무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난 지 62년이 지나도록 가나안 땅에서 단 한 평의 소유지도 없는 나그네였습니다. 넉넉한 재산과 수백 명의 군사력을 가졌지만, 법적으로 그의 것인 땅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내 사라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처음으로 이 땅의 소유권 문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 땅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매입한 것은 집도 아니고, 밭도 아니고, 무덤이었습니다.
이것은 아이러니가 아닙니다. 선언입니다. 아브라함은 무덤을 삼으로써, 이 땅에서의 자신의 소망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온몸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를 처음 소유지로 택한 사람, 그는 이미 죽음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그네였지만, 비굴하지는 않았습니다”
헷 족속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4절). 62년을 산 땅에서, 그는 여전히 자신을 이방인으로 규정합니다. 이것은 열등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때가 아직 아님을 알기에, 그 약속을 앞당겨 세상 방식으로 취하지 않겠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헷 족속은 이 나그네를 이렇게 부릅니다.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입니다”(6절, 직역). 히브리어로 ‘네시 엘로힘’, 하나님이 세우신 고귀한 통치자라는 뜻입니다. 스스로를 나그네라 낮춘 사람을,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높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에 동화되지 않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습니다. 비굴하지 않은 나그네, 그것이 성도의 자화상입니다.

“은 400세겔, 한 마디 흥정 없이 지불했습니다”
에브론이 제시한 은 400세겔은 당시 시세로 보면 상당히 고가였습니다. 에브론은 처음엔 “그냥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정중히 거절하고 정당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거듭 말합니다. 그리고 결국 단 한 마디의 흥정도 없이 그 값을 다 지불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공짜로 받은 것은 나중에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후손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법적 소유권을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방인의 동정 덕분에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받되, 세상이 주는 것에 빚지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에는 때로 값비싼 대가가 따릅니다. 아브라함은 그 대가를 기꺼이, 그리고 흔쾌히 지불했습니다.

2. 삶의 적용
1) ‘나그네’의 정체성으로 당당하게 서기
오늘 세상의 기준이 당신을 흔들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처럼 “나는 이 땅의 나그네”임을 인정할 때, 오히려 세상이 줄 수 없는 당당함이 생깁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 치기보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네시 엘로힘)답게 정직과 예의로 오늘 만나는 이웃들을 대하십시오.

2) 오늘 당신의 인생 밭에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처음 심은 것은 ‘무덤’이라는 소망의 씨앗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에서 행하는 작은 순종, 보상 없는 헌신, 심지어 상실의 아픔까지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는 영원한 기업을 위한 ‘심음’입니다. 오늘 당신의 삶에 썩어질 육신의 정욕이 아닌, 영원히 빛날 소망의 흔적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성도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보게 됩니다. 스스로를 나그네라 부르면서도 세상 앞에 당당했던 그의 모습이 도전이 됩니다.
저도 이 땅에서 더 편하게, 더 안정되게 살기 위해 때로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의 방식을 따라가려 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보다 내 힘으로 앞당기려 했음을 고백합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으로 오늘의 나그네 길을 걷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며 오늘의 작은 순종과 헌신을 기쁘게 심게 하소서. 세상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으로 이웃 앞에 서게 하소서.
믿음의 조상들이 바라보았던 그 부활의 소망이 오늘 저의 소망도 되게 하시고,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의 자리 앞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고 담대히 설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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