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1)

1. 묵상
13년, 침묵의 시간을 지나며
오늘 본문은 “아브람이 99세 때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바로 앞장인 16장의 마지막이 아브람 86세였으니, 성경은 무려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침묵 속에 건너뛴 것입니다.
이 13년 동안 아브람은 무엇을 했을까요? 그는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으로 얻은 아들 ‘이스마엘’을 키우며 나름의 행복을 누렸을 것입니다. “이만하면 되었다. 내 힘으로 대를 이을 아들을 얻었으니 하나님의 약속은 이렇게 성취된 것이다.” 어쩌면 그는 현실에 안주하며, 더 이상 기적을 기대하지 않는 영적 정체기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도 그동안 침묵하셨습니다.

엘 샤다이, 너에게 충분한 하나님
인간의 생물학적 가능성이 완전히 끝난 99세의 노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 긴 침묵을 깨고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엘 샤다이(전능한 하나님)’라고 소개하십니다. 이 이름은 단순히 힘센 하나님이라는 뜻을 넘어, ‘자신만으로 충분하신 분’, ‘모든 필요를 채우기에 족한 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묻고 계신 것입니다.
“아브람아, 너는 너의 늙은 육체를 보며 절망하느냐? 아니면 네가 만든 대안(이스마엘)에 만족하느냐? 나는 네 힘이 끝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전능자이며, 나 하나만으로 너에게 충분한 하나님이다.”

코람 데오, 하나님 시선 앞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신 후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명하십니다. 여기서 ‘내 앞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보고(코람 데오)’ 살라는 뜻입니다. 지난 13년간 아브람이 하나님의 눈을 피해 인간적인 계산과 방법(하갈과 이스마엘)을 의지해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불꽃 같은 시선을 의식하며 살라는 초대입니다.
‘완전하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죄를 짓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갈라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믿고 세상의 보험도 들어놓는 ‘두 마음’을 버리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께만 시선을 고정하는 것,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완전함입니다.
우리의 99세는 끝이 아닙니다. 내 힘, 내 계획, 내 자랑이 모두 바닥난 그 절망의 자리가 바로 ‘엘 샤다이’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시는 기적의 입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에 충분하신 분이십니다.

2. 삶의 적용
1) 나의 ‘이스마엘’ 내려놓기
하나님의 응답이 더디다고 느껴져서 내가 만들어낸 나만의 인간적인 대책(이스마엘)은 무엇입니까? “이 정도면 됐어”라고 현실에 안주하며 하나님을 향한 기대감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봅시다.

2) ‘코람데오’를 기억하는 하루
오늘 하루, 사람들의 시선이나 세상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 살아가는 연습을 해봅시다. 복잡한 계산기를 내려놓고, 단순하게 하나님만 신뢰할 때 주시는 평안을 누려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때로는 꽉 막힌 현실 앞에서 내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발버둥 치며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눈앞의 ‘이스마엘’이 주는 안락함에 취해 영적인 목마름조차 잊고 살았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내 힘이 다한 99세의 절망 속에서 저를 찾아오신 주님을 만납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말씀하시는 그 음성이 제 영혼을 깨우게 하옵소서. 나의 얕은 계산과 인간적인 방법들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함을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도 사람의 눈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걷는 믿음의 길을 가게 하옵소서. 나의 영원한 기업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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