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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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 숨는 인간, 찾으시는 하나님
[무화과 잎, 우리가 만든 슬픈 옷]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온 첫 번째 변화는 ‘수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처럼 높아지려 했던 그들은 도리어 자신들의 비참한 벌거벗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급히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듭니다. 이것은 단순한 옷이 아닙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스스로 해결해 보려는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자, ‘내가 만든 종교’의 시작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입고 있는 무화과 잎은 무엇입니까? 어떤 분에게는 그것이 남부럽지 않은 학력이나 재산일 수 있고, 어떤 분에게는 도덕적인 평판이나 바쁜 사역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서는 것이 두려워, 성공과 위선이라는 잎사귀 뒤에 숨어 괜찮은 척 연기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무화과 잎은 해가 뜨면 곧 말라 비틀어질 일시적인 가리개일 뿐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그렇게 두려움에 떨며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아담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아담의 숨은 장소를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죄인을 심판대로 호출하는 검사의 심문이 아니라, 길 잃은 자녀를 찾으시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외침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지금 영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느냐? 왜 내 품을 떠나 그 차가운 나무 뒤에 숨어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은혜의 초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숨어 있는 그 나무 뒤까지 찾아오셔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대화를 시도하십니다.
[가죽옷을 입혀주시는 사랑]
우리가 무화과 잎을 벗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옷을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죄 없는 짐승을 희생시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이는 장차 십자가에서 찢기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나의 노력으로 만든 무화과 잎은 벗어버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십시오. 그것만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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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삶의 적용
1) “너 때문이야”라는 말을 멈추십시오.
아담은 범죄 후 “하나님이 주신 저 여자 때문에”라며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내 불행과 실수를 환경 탓, 사람 탓으로 돌리는 것은 죄인의 본성입니다. 오늘 하루, 가정과 일터에서 비난의 손가락질을 멈추고 “내 탓입니다. 내가 부족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보십시오. 핑계가 사라진 자리에 은혜가 임합니다.
2) 하나님 앞에서의 가면을 벗으십시오.
기도하는 자리에 앉아서도 우리는 종종 점잖은 종교적 언어로 자신을 포장합니다. 오늘 묵상 시간에는 하나님께 솔직한 나의 모습을 드러내십시오. “주님, 저는 지금 실패감 뒤에 숨어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인정이라는 무화과 잎을 붙들고 있습니다.” 나의 ‘어디 있음’을 정직하게 고백할 때, 하나님은 가죽옷 같은 따스한 은혜로 덮어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화려한 성공과 위선의 무화과 잎으로 저의 부끄러움을 가리려 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며 찾아와주신 주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갑니다. 저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만든 의의 옷을 입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