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창 43:23a)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창 43:30)

1. 묵상
“죄책감은 은혜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던 그 순간, 그들의 마음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18절). 이것은 상황을 잘못 읽은 것이 아닙니다. 죄책감이 그렇게 움직인 것입니다.
사실 그 집으로의 초대는 총리의 환대였습니다. 베냐민을 보자마자 요셉이 내린 첫 번째 명령은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16절)였습니다. 잔치를 베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그 호의를 심판의 전조로 읽었습니다. 죄 있는 양심은 이렇게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손을 내밀어도, 죄책감은 그 손을 보복의 손으로 읽어냅니다.
오늘 내 앞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섭리를 어떻게 읽고 있습니까? 뜻밖의 좋은 일에도 “이것이 나중에 더 큰 어려움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며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것이 때로는 해결받지 못한 죄책감의 목소리일 수 있습니다. 죄책감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은혜는 먼저 옵니다”
그런 형들에게 청지기가 말합니다.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형들이 변명을 다 쏟아내기도 전에, 해명을 다 마치기도 전에, 청지기가 먼저 선언합니다.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23절).
이것이 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평강이 먼저 왔습니다. 형들의 회개가 완성되기 전에, 그들이 충분히 정결해지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은혜가 앞서 도착해 있었습니다.
내가 변명을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은 이미 먼저 선언하셨습니다.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은혜는 내가 알아차리기 전에 이미 와 있었습니다.

“억제된 눈물의 깊이”
요셉은 형들을 맞이하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베냐민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본문은 말합니다.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30절).
이 눈물이 의미심장한 것은, 요셉이 다시 나와서 “정을 억제”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31절). 히브리어에서 이 “정”은 하나님의 긍휼을 가리키는 ‘라함’과 같은 어근입니다. 야곱이 14절에서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사”라고 기도할 때 쓴 바로 그 단어입니다. 요셉 안에 있던 것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닮은 사랑이었습니다.
요셉은 그 사랑을 억제했습니다. 터질 것 같은 감격을 억눌렀습니다. 형들이 아직 더 가야 할 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오래 기다립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이 차고 넘치는데도, 우리가 더 깊이 성숙해지기를 기다리시며 그 사랑의 전부를 한꺼번에 쏟아붓지 않으십니다.
요셉이 안방에서 울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은 이미 나를 향해 복받치고 있습니다.

“마침내 한 식탁에서”
두려움으로 시작된 본문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34절). 심판의 자리로 오해했던 그 집이, 함께 먹고 마시며 기뻐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두려움이 평강이 되고, 평강이 기쁨이 됩니다. 이것이 은혜의 여정입니다.

2. 삶의 적용
1) 하나님의 섭리를 죄책감의 눈이 아닌 은혜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지금 내 삶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내게 하시는가”를 두려움으로 묻기 전에,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 무엇을 주시려는가”를 믿음으로 물으십시오.

2) 하나님의 침묵처럼 느껴지는 시간에도 그분의 긍휼을 신뢰하십시오.
요셉의 눈물이 형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긍휼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자리에서 이미 우리를 향해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분의 사랑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형들은 총리의 호의를 보복의 전조로 읽었습니다. 두려움이 눈을 가리면 은혜도 심판처럼 보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뜻밖의 좋은 일에도 쉽게 기뻐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두려움으로 먼저 읽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청지기가 먼저 선언했습니다.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은혜는 제 변명이 끝나기 전에 이미 와 있었습니다. 요셉이 안방에서 울고 있었듯, 주님의 마음도 이미 저를 향해 복받치고 있음을 믿습니다.
두려움이 평강이 되고, 평강이 기쁨이 되는 그 여정을 오늘도 걸어가게 하옵소서. 죄책감이 아닌 은혜의 눈으로 주님의 섭리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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