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요한복음 9:25, 35)
1. 묵상 “우리는 아노라” vs “내가 아는 한 가지”
오늘 본문에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부류의 ‘지식’이 등장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24절)”며 자신들의 신학적 틀로 예수님을 정죄합니다. 그들에게 지식은 타인을 심판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도구였습니다.
반면, 평생 어둠 속에 살다 눈을 뜬 사람은 단순하게 대답합니다. “그가 죄인인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내가 맹인이었다가 지금은 본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인인 우리도 수많은 정보와 신학적 지식 속에 파묻혀 삽니다. 하지만 정작 내 삶을 변화시킨 ‘한 가지 사실’, 즉 그리스도를 만나 내 영혼의 눈이 밝아진 실재적 체험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바리새인들처럼 딱딱한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이 붙들고 있는 것은 타인을 비판하기 위한 ‘이론’입니까, 아니면 나를 살린 ‘생명의 사실’입니까?
“쫓겨난 자리에서 만난 분” : 세상의 거절이 가져다준 선물
진실을 말한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치유받은 자는 유대 공동체에서 ‘출교’를 당합니다(34절). 당시 사회에서 이는 가족과 경제적 기반을 모두 잃는 ‘사회적 사형’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절망의 순간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35절).” 세상이 그를 버렸을 때, 주님은 그를 ‘추적’하여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을 지키다 손해를 보거나, 정직함 때문에 소외될 때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세상의 문이 닫히는 바로 그 자리가 하늘의 문이 열리는 자리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장 고립되었을 때 자신을 가장 깊이 계시하십니다. 쫓겨남은 끝이 아니라, 주님을 ‘경배자’로서 대면하는 영광스러운 시작입니다.
“본다고 하니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주님은 스스로를 영적 스승이라 자부하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충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차라리 맹인이었다면 죄가 없었겠지만, “본다”고 고집하기에 그들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41절).
신앙의 가장 큰 장애물은 무지가 아니라 ‘자만’입니다.”나는 다 안다, 나는 충분히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영혼에는 스스로 진리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영적 눈가림’의 안개가 끼기 시작합니다. 매일 주님의 빛 앞에서 나의 ‘전적 부패’와 ‘영적 무지’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자만이, 날마다 새롭게 비추시는 생명의 빛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삶의 적용 나의 ‘한 가지 간증’ 회복하기
거창한 신학 논리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전에는 이런 어둠 속에 있었으나, 주님을 만나 이런 빛을 보게 되었다”는 명확한 은혜의 사실 한 가지만을 나누어 봅시다. 이론보다 강력한 것은 변화된 삶의 증거입니다.
외로운 자리에 머물고 있는 이 찾아가기
주님이 출교당한 자를 찾아가셨듯, 오늘 내 주변에 믿음을 지키느라 혹은 고난 중에 고립된 지체는 없는지 살펴봅시다.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주님이 당신과 함께하신다”는 위로를 전하는 ‘작은 예수’의 발걸음을 옮겨 봅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아노라”고 말하며 내 얄팍한 경험과 지식으로 주님의 역사를 제한하고 타인을 정죄했던 저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이론에 휘둘리기보다 “내가 맹인이었으나 이제는 본다”는 이 단순하고도 강력한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게 하소서.
세상에서 소외되고 거절당하는 것 같은 순간에도, 저를 먼저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믿느냐”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오늘도 제가 본다고 자만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세상의 빛 되신 주님만을 의지하며 걷게 하소서.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