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였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젯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창 31:42)
1. 묵상 “하나님이 보고 계셨습니다”
라반이 드라빔을 찾지 못하자 야곱은 지난 20년간 가슴에 쌓아두었던 울분을 토해냅니다. 낮에는 더위와 싸우고 밤에는 추위와 맞서며, 맹수에게 물려 찢긴 가축까지 자기 것으로 보충하며 보낸 20년입니다. 라반은 열 번이나 품삯을 바꾸며 야곱을 착취했습니다. 야곱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 나뭇가지를 세우는 등 인간적인 꾀를 부리기도 했던 ‘여전한 야곱’이었습니다.
우리의 일터도 때로는 라반의 집과 같을 때가 있습니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수고를 가로채는 사람들 틈에서 낙심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우리도 야곱처럼 늘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지는 못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야곱의 그 미성숙함과 교활함 너머, 그가 라반의 불의 아래서 겪었던 ‘실제적인 고난’과 ‘손의 수고’를 보고 계셨습니다. 야곱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삭의 경외하는 이, 나의 마지막 보루”
야곱은 하나님을 ‘이삭이 경외하는 이(파하드 이츠하크)’라고 부릅니다. 이는 죽음의 문턱(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경험했던 아버지 이삭의 경외감을 의미합니다. 야곱이 20년의 착취를 견디고 마침내 빈손이 아닌 ‘거부’가 되어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였더면…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42절). 야곱은 비로소 고백합니다. 내 재산은 내 잔꾀의 결과가 아니라, 라반의 입에 재갈을 물리시고 야곱의 편을 들어주신 하나님의 ‘강권적인 보호’의 결과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실력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세상을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미스바 : 신뢰가 아닌 위탁의 자리”
야곱과 라반은 돌무더기를 쌓고 ‘미스바’라 이름합니다. 흔히 축복의 상징으로 쓰이지만, 본래의 의미는 엄중합니다.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49절). 이는 “내가 너를 믿지 못하니, 하나님이 파수꾼이 되어 달라”는 뜻입니다.
인간관계의 갈등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신뢰해서 끝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도, 믿을 수도 없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 사이에 하나님을 세우는 것입니다. 직접 복수하거나 통제하려는 손을 내리고, 하나님을 우리 사이의 파수꾼으로 세울 때 비로소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롭게 떠날 수 있습니다.
2. 삶의 적용 1) 일상과 직장에서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가져가고 있습니까?
나의 부족함과 실수는 주님께 회개하되, 내가 감당한 정당한 수고는 주님이 다 알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오늘 내가 흘린 땀방울을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2) 내 힘으로 풀 수 없는 꼬인 관계가 있습니까?
상대방을 내가 직접 통제하려 하지 말고 미스바의 하나님께 맡겨 드리십시오. “하나님, 저와 그 사람 사이에서 주님이 판결하시고 지켜주옵소서”라고 고백하며, 그 사람에 대한 집착과 분노를 내려놓는 연습을 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야곱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고를 하나하나 세고 계셨던 주님을 의지합니다. 완벽하지 않은 나의 삶도 주님은 처음부터 보고 계셨음을 믿습니다. 세상이 나의 수고를 이용하려 하고 억울하게 할 때에도, 공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나의 방패가 되어 주심을 믿고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서로 믿지 못해 불안한 관계 속에 미스바를 세웁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하나님은 살피시는 분임을 믿사오니, 모든 판단과 보응을 주님께 맡기게 하옵소서. 이제 과거의 상처와 결별하고 주님이 예비하신 가나안을 향해 담대히 전진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