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창세기 29:35)

1. 묵상
“아침에 보니 레아라”
야곱은 7년을 기다렸습니다. 7년을 며칠처럼 여길 만큼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혼인 잔치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곁에 누운 사람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성경은 이 순간을 담담하고도 짧게 기록합니다. “아침에 보니 레아라.”
이 다섯 글자가 우리 가슴에 꽂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아침을 맞이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수고 끝에 손에 쥔 것이 기대와 전혀 달랐던 아침, 애써 가꾼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어긋나 있던 아침, 분명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걸어왔는데 내 곁에는 내가 원하지 않던 현실이 버티고 있던 그 아침. 우리는 그 자리에서 야곱처럼 항변하고 싶어집니다.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하셨나이까?”
그러나 오늘 본문은 야곱의 이야기가 아니라 레아의 이야기에 더 오랜 시간을 씁니다. 하나님도 그러셨습니다. 세상의 눈이 야곱의 분노와 라헬의 아름다움을 향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시선은 한곳에 머물렀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레아에게로.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31절의 이 한 문장은 본문 전체의 심장입니다. 레아는 속임수의 도구로 동원된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여동생과의 경쟁에서 날마다 패배했으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아들을 낳고 또 낳았습니다. 세상은 그녀를 조연으로 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소외된 여인의 심령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보셨습니다.
레아가 첫 아들을 낳으며 지은 이름은 르우벤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나님을 언급하지만, 시선의 끝은 남편에게 닿아 있었습니다. 둘째 시므온을 낳을 때도 그랬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다” 그분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그 은혜를 남편의 마음을 돌리는 수단으로 기대했습니다. 셋째 레위를 낳을 때 그녀는 하나님의 이름을 아예 빼버립니다. “내 남편이 이제는 나와 연합하리로다.” 세 아들을 낳아도 야곱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레아의 절망과 집착은 그만큼 더 깊어졌습니다.
그런데 넷째 아들을 낳으며 무언가 달라집니다.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유다를 낳을 때 레아의 고백에는 남편 야곱이 없습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호소도, 인정받고 싶다는 갈망도 없습니다. 그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환경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여전히 라헬을 편애했고, 레아의 자리는 그대로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아는 더 이상 사람의 인정에 자신의 가치를 매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그 결단이 한 단어로 표현된 것이 바로 ‘유다(찬양)’입니다.
이것이 신앙 성숙의 결정적 전환점입니다. 르우벤의 자리는 “하나님이 보셨으니, 사람도 나를 알아주겠지”라는 단계입니다. 시므온의 자리는 “하나님이 들으셨으니, 내 상처가 해결되겠지”라는 단계입니다. 레위의 자리는 “그래도 나는 이 사람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인간적 집착의 절정입니다. 그러나 유다의 자리는 다릅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하다. 그분이 나를 보셨으니, 나는 이제 찬양한다.”
하나님은 레아의 이 믿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사랑받지 못했던 여인의 태에서, 훗날 다윗이 나오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 유다 지파가 시작됩니다. 세상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며 실망하고 등을 돌릴 때, 하나님은 바로 그 레아를 통해 인류의 구원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2. 삶의 적용
1) 지금 나는 몇 번째 아들의 자리에 있습니까?
르우벤과 시므온의 자리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도 그 은혜를 사람의 인정을 얻기 위한 도구로 기대하는 자리입니다. 레위의 자리는 그래도 저 사람이 나를 알아주어야 한다는 집착이 남아 있는 자리입니다. 오늘 내가 가장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려 보십시오. 그 이름을 하나님 앞에 조용히 내려놓아 봅시다.

2) 오늘, 환경이 바뀌기 전에 찬양해 보십시오.
레아의 찬양은 야곱의 마음이 돌아선 후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입술로 선포한 찬양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아직 해결되지 않은 그 문제를 안은 채로,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먼저 고백해 보십시오. 그 고백이 유다를 낳는 믿음의 첫걸음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레아처럼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오늘도 묵묵히 하루를 시작합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 알아주는 사람 없는 수고의 자리, 기대와 다른 현실 앞에서 지쳐가는 그 자리에서 주님이 먼저 “보시고” 계심을 믿게 하옵소서.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의 자리를 넘어, 오늘 유다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환경이 바뀌어야 찬양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이 아침에 먼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소외된 자리를 주목하시고, 그 자리에서 구원의 역사를 써 내려가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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