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창 25:7-8, 11)
1. 묵상 “기운이 다하여” – 약속대로 마친 인생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창 15:15). 그리고 수십 년이 흘러, 그 약속이 정확히 이루어집니다.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8절). 히브리어 원문의 ‘기운이 다하여’는 단순한 노쇠함이 아니라 ‘충분히 만족한 상태로'(사베아)라는 뜻입니다. 억지로 빼앗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다 살아낸 후 기쁘게 돌려드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소명을 받고 100년을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 여정이 늘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패배자의 한숨이 아니라, 완주자의 안도였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아들, 무덤 터, 언약의 계승-이 하나씩 성취되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떠난 것입니다. 성도의 복된 임종은 세상에 쌓아둔 재산의 양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내 삶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는 데서 옵니다.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 죽음은 귀향입니다.
성경이 아브라함의 죽음을 묘사한 표현이 의미심장합니다.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소멸이 아니라 귀환입니다. 오래 떠나 있던 나그네가 마침내 본향으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이 평생 “더 나은 본향”, 즉 하늘에 있는 것을 사모하였다고 증언합니다(히 11:16). 그에게 이 땅의 삶은 끝이 아니라 출발이었고, 죽음은 상실이 아니라 도착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대부분 ‘이 땅이 전부’라는 착각에서 옵니다. 아브라함처럼 본향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죽음은 더 이상 공포의 문이 아니라 오래 기다리던 귀향의 문이 됩니다. 그 문 너머에 이미 먼저 가신 열조들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셨더라” – 물려받은 믿음에서 나의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사라진 자리, 11절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이 없어도 하나님의 약속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복의 근원이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머물렀던 곳이 의미 있습니다. ‘브엘라해로이’, “나를 살피시는 살아 계신 이의 우물.” 하갈이 광야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을 만났던 그 샘가에서, 이삭은 아버지가 섬겼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직접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은 다음 세대에게 반드시 전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전수받은 신앙은 반드시 나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삭은 스스로 그 샘가로 걸어갔습니다. 물려받은 믿음이 내 안에서 살아있는 믿음이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신앙의 계승입니다.
2. 삶의 적용 1) 나는 오늘 하루를 ‘기운이 다하도록’ 살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175년은 어느 날 갑자기 만족스러워진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낸 날들이 쌓여 “충만한 날들”이 된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를, 나중에 뒤돌아볼 때 아깝지 않을 하루로 살아가십시오.
2) 나에게는 ‘브엘라해로이의 샘’이 있습니까?
부모의 신앙, 교회의 신앙, 목사의 신앙이 아닌, 오직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내가 직접 만나는 시간과 장소가 있습니까? 오늘 그 우물가로 걸어가십시오. 이삭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 샘가에서 하나님을 만났듯,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그 고요한 만남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브라함의 장엄한 퇴장을 보며 우리 인생이 지향해야 할 좌표를 다시 잡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 미련이나 후회가 남는 삶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한 시간들로 인해 만족하며 기쁘게 본향으로 돌아가는 복된 나그네가 되게 하소서.
사람은 사라져도 주님의 약속은 영원함을 믿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세상의 썩어질 재물보다 영원히 쇠하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을 가장 귀한 유산으로 물려주는 믿음의 부모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부모의 그늘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나를 살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홀로 대면하며 당당히 일어서는 다음 세대를 세워 주소서.
우리 인생의 참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