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고전 6:11)

1. 묵상
“형제를 세상 앞에 세운 교회”
고린도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 일을 교회 안에서 풀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 앞,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바울은 아프게 책망합니다.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6절). 형제를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 보지 못하고, 법정에서 이겨야 할 상대로 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너희가 누구인지 잊었느냐?”

“차라리 불의를 당하라”
바울은 더 깊이 들어갑니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7절). 불의를 덮으라거나 피해를 참고 방치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도는 장차 세상을 판단할 자입니다(2절). 그렇게 큰 신분을 지닌 사람이 작은 다툼 하나로 세상 법정 앞에 서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자기 권리를 지키는 일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더 소중한 사람, 내가 이기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등 앞에서 쉽게 “내가 맞다”는 생각에 붙들립니다. 그러나 우리를 정죄할 권리가 있으셨던 분이 도리어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습니다.

“씻음 받은 사람의 새 길”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9절). 그러나 그 무거운 책망의 끝에서 그는 방향을 돌립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한때 너희가 머물던 자리가 거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그러나”를 세 번 반복합니다(원문에 표기되어 있음). 그러나 씻음을 받고, 그러나 거룩함을 받고, 그러나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옛 자리는 길게 이어지던 자리였지만, 씻음은 하나님이 단번에 이루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새 삶은 두려운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깨끗해져야 받아들여진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씻으셨기에 씻음 받은 사람답게 산다”입니다.
오늘도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새 이름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씻음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형제를 세상의 상대가 아니라 형제로 대하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2. 삶의 적용
1) 갈등 속에서 먼저 나의 새 신분을 기억하기
억울함이 올라올 때 곧바로 판단하고 반응하기 전에,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셨는지 먼저 떠올려 보십시오. 나는 정죄받을 자리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은혜를 기억할 때 말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2) 이김보다 회복을 구하기
성도가 모든 갈등에서 무조건 물러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이 일이 하나님의 이름과 공동체를 어떻게 세울 수 있을지 먼저 물으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셨기에, 우리도 회복의 길을 찾는 사람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과거와 죄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갈등 앞에서 형제를 형제로 보지 못하고 이겨야 할 상대로 여겼던 마음을 용서해 주옵소서. 우리의 권리와 억울함이 주님의 이름보다 앞설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미 씻음 받은 사람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다툼 속에서도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복음의 길을 걷게 하시고, 이김보다 회복을 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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