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환도뼈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창세기 32:31)
1. 묵상 “당신의 환도뼈는 안녕합니까?”
야곱은 평생 자신의 지략과 민첩함으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난 순간부터, 라반의 집에서 거부가 되기까지 그는 한 번도 ‘자기 힘’을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은 인생 최대의 위기인 얍복 강가에서 위로 대신 ‘씨름’을 거십니다. 그리고 밤새 버티는 야곱의 환도뼈(고관절)를 치십니다.
환도뼈는 인간의 하체에서 힘이 응집되는 곳이며, 보행과 지탱의 핵심입니다. 이곳이 어긋났다는 것은 이제 야곱이 더 이상 자신의 발로 설 수도, 에서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는 ‘철저한 무능력’의 상태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기에, 그를 절뚝발이로 만드셨습니다. 자기 신뢰라는 감옥에 갇힌 야곱을 해방시키기 위해 그의 가장 강한 곳을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패배를 통한 승리, 이스라엘”
환도뼈가 위골된 후에야 야곱의 씨름은 ‘공격’에서 ‘매달림’으로 바뀝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붙듭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물으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속이는 자)이니이다.”
자신의 추한 정체성을 정직하게 폭로하는 그 지점에서 전환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이라 부르십니다. 직역하면 “하나님과 다투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고) 다투신다”로도 해석됩니다. 마치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려 할 때 기꺼이 실랑이를 벌이는 부모처럼, 하나님은 야곱의 완고한 자아와 끝까지 씨름하시며 그를 복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을 나타냅니다. 그 사랑은 야곱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도, 포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의 씨름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씨름도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절뚝거리며 걷는 영광”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습니다. 성경은 그 찬란한 아침 햇살과 야곱의 절뚝거리는 뒷모습을 대조하며 보여줍니다. 야곱에게 이 절뚝거림은 평생의 가시였겠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없으면 한 걸음도 뗄 수 없다’는 은혜의 징표였습니다.
세상은 강함을 자랑하라 말하지만, 복음은 우리의 약함을 자랑하라 합니다. 우리가 절뚝거리며 하나님께 기댈 때, 우리 인생에는 비로소 ‘브니엘의 해’가 떠오릅니다. 오늘 당신의 삶에 무너진 환도뼈가 있습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자리가 바로 ‘야곱’이 죽고 ‘이스라엘’이 태어나는 거룩한 산실입니다.
2. 삶의 적용 1) 나의 ‘환도뼈’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없이도 내 인생을 충분히 지탱할 수 있다고 믿어온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환도뼈입니다. 그 힘을 내려놓는 것이 패배가 아닙니다. 야곱이 환도뼈를 잃고 나서야 하나님을 붙들었던 것처럼, 그 내려놓음이 진짜 이스라엘의 출발점입니다.
2)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야곱은 절뚝거리며 브니엘을 지났지만, 그는 더 이상 도망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로, 당당히 가나안을 향해 걷고 있었습니다. 오늘 나의 연약함이 하나님을 더 깊이 붙드는 이유가 되게 하십시오. 절뚝거리는 걸음으로도, 주님을 붙들고 걷는 사람이 가장 멀리 갑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평생 내 힘과 지략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야곱’ 같은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 환도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아픔과 고난이 닥칠 때, 그것이 나를 무너뜨리려는 심판이 아니라 나를 ‘이스라엘’로 빚으시는 주님의 거룩한 습격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이제는 내 발로 도망치는 삶이 아니라, 주님께 매달려 주님의 속도로 걷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절뚝거리는 나의 일상 위로 브니엘의 찬란한 아침 햇살을 비추어 주옵소서. 우리를 이기는 자로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